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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후기--- 이제 달마엔 그녀가 없습니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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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들 >

 

제가 타는 차는 올해로 16년이 다 되어가는 흰색의 중형차입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던 2007 5월에 이 차를 뽑았으니 정확하게는 15 8개월이 되었군요.

그래서 아무래도 처음 보다는 힘도 좀 딸리고 잔고장도 잦게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타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이 차를 몰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합니다.

지금 굳이 이 차를 바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주위에서 자꾸만 제가 이 차를 바꾸지 않는다고 난리들 입니다.

“아니, 사장님 체면과 품위도 생각하셔야죠. 차 바꾸실 형편이 안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안바꾸고 이 차를 그렇게나 계속 고집하시는 거예요?

제가 회사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이 크게 닥치면서, 믿었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직원들마저 다 떠나버린 회사를 저는 홀로 지켜야 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고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 힘든 순간들을 함께 했던 차.

낭떠러지로 차를 몰아 굴러버릴까 하고 까지 생각했던 절망의 밑바닥이었을 때에도 그 낭떠러지 끝에 서있던 나를 바라봐 주었던 차.

횡포를 부리는 갑 회사의 요구를 맞추어 주고 내가 이렇게 까지 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작 2만원어치의 물건을 들고 새벽에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함께 달려가야 했던 이 차…

그런데 내가 이제 형편이 나아지고 돈이 좀 생겼다고 해서 어떻게 이 차를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 사무실에는 큰 화분 몇 개가 있습니다.

이 화분들 역시 회사를 차리고 처음 사무실을 오픈하였을 때 지인들께서 보내주신 축하 화분이므로 이제 16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러다 보니 화분들도 오래되어 이제 대부분 시들시들 합니다.

제가 있을 때에는 잘 챙겨서 물을 주곤 하는데 출장 등으로 사무실을 오래 비우는 기간이 많았다 보니 그 동안엔 직원들이 제대로 챙기지를 않는 것 같았습니다.

심어진지도 오래 된데다가 제 때에 물도 잘 주지 않다보니 처음에는 싱싱하던 화분의 나무나 화초들이 대부분 시들어 갔습니다.

그 화분들을 보고도 사람들은 또 입을 댑니다.

“이 화분 이제 좀 바꾸세요. 버리든지 아니면 바꾸든지… 싱싱한 새 화분 좋은 것 많은데 왜 이런걸 그대로 놔두는 거에요?

이런 화분들이 사무실을 지저분하게 보이게 한다며 내다 버리라고 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시들어 가는 화초에 물도 꼬박꼬박 주고 영양제도 줘가면서 직원들에게만 맡겨놓았던 그 화분들을 어떻게든 되살려 보려고 애써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 화분의 나무 가지들에서 연두색의 새로운 싹이 돋아 나오는 걸 봤습니다.

그걸 보며 너무 기뻤습니다.

그 화분 버리라고 한 사람을 불러다 보여주며 외치고 싶었습니다.

“보세요!!! 보세요!!! 여기 다시 새 잎이 나고 있어요. 다시 싹이 나고 있어요. 이렇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생명을 왜 버려요? 왜 바꾸라는 거예요?

마치 내가 회사를 설립하고 얼마 안되어 거의 망하다시피 했던 그때, 내 뒷통수를 치고 나를 배신했던 사람들을 원망하며 죽음까지 생각했던 그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내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 절망의 순간에도 또 희망의 순간에도 내 곁에 있어 주었던 나의 소중한 화분들입니다.

연두색의 새싹이 돋아난 화분도 있었고 예쁜 꽃을 다시 피워준 화분도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 화분들에게 열심히 물을 주며 변함없는 마음도 역시 함께 담아주고 있습니다.

 

원래 저는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잘 버리질 못합니다.

산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 옷장 안에서 가끔씩 꺼내어 입어보는 옷들도 있습니다.

목덜미나 소매 가장자리 부분이 살짝 헤져나가 올이 풀리는 것도 있습니다만 다 제가 좋아서 골랐던 옷들입니다.

제 바지의 허리띠는 오래되어 껍질이 살짝 벗겨져 떨어지기도 합니다.

지인 중 한분이 그걸 보고는 안타까웠던지 생일을 핑계로 지갑과 함께 허리띠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미 선물로 받은 허리띠가 아직 4개나 포장도 뜯기지 않은채 서랍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낡은 제 주변의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물건들과 함께한 저의 시간들을 버리는 것 같은 아쉬움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쓰던 물건들을 아예 버리지 않는 건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은 나와 함께할 수 없는 옷들을 버릴 때에는 마음 속으로 약간의 의식을 치릅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입어보고 그리곤 곱게 접어 손으로 만져보며 한번 더 그 옷의 지난 시간들을 기억해 봅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칫솔을 버릴 때에도 면도날을 버릴 때에도, 마음 속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지난 12월의 마지막 주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제 두번째 후기에서도 적었던 것처럼 그녀는 이미 12월말의 은퇴를 오래 전부터 예고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언젠간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죽음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며 살아가듯, 그녀가 이미 12월 말의 은퇴를 예고했음에도 저는 나날이 다가오는 그 마지막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그날은 출근부에도 올리지 않고 저만을 보기 위해 출근한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을 예약했었지만 2시간 40분 가까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예쁜 모습을 보고,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다음주면 또다시 만날 사람과 헤어지듯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랫동안 입었던 옷과 헤어질 때 마음 속으로 해왔던 작별의 인사 같은 것도 제대로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이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없다는 실감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걸 느낍니다.

마치 알리가 부른 노래 “365일” 의 가사 같군요.

그녀가 생각나면 전에 제가 적었던 그녀에 관한 후기들을 다시 찾아서 계속 읽어보고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며 그리워 하는 것을 “추억한다” 라고 하더군요.

달마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통로를 지나 바로 마주하는 3번방…

오늘 나는 이렇게 그녀의 마지막 후기를 적으며, 3번 방에서 함께 했던 그녀의 모습 그녀의 말소리 그녀의 손짓 그녀와의 시간들을 추억합니다..

잘 지내고 있는거죠? 민정씨…

 

 

후기 같지도 않은 후기라 자유게시판에다 적을까 하다가 후기게시판에다 적습니다.

제가 걱정된다고 까지 말씀하시며 염려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회원님, 얼른 새로운 지명 만들어서 떠나버린 지명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응원해 주신 회원님…

모두들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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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9개 / 2페이지

아놀드님의 댓글

'추억한다'라는 단어가 이처럼 마음깊히 울림을 준 적이 거의 없는듯 합니다.
저에게도 귀한 한 분이 계신데...
늘 준비하는 자세로 임하려고 합니다

옆집호야님의 댓글

이 또 한 자연스레 흘러갈것입니다...누군가를 추억하는 이 순간마져도 추억으로 기억되겠지요...

치킨요괴님의 댓글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는법이죠.

지난날을 안주삼아 추억하되 얽매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올드보이님의 댓글의 댓글

@ 스누피1849
시 한편 올립니다.

<풀잎 스친 바람에도 행복하라>

                            詩 / 이채

정직하면 손해 보고
착하면 무시당하는 것이
세상인심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정직하라

뿌린다고 다 열매가 아니듯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잘 사는 것도 아닐 테니
이 또한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감사하라

사랑은 흔해도 진실은 드물고
사람은 많아도 가슴이 없을 때
산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 일인가
그럼에도 사랑하라

살아온 날은 고단하고
살아갈 날은 아득해도
사람아, 그럼에도 사람아
풀잎 스친 바람에도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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